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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독학 정보

기타를 글로 배웠어요 6

켄지 4 2350

  베이스 기타는 음을 하나씩만 쳐도 됐다. 그것도 코드의 근음만 누르면 되었기에 처음에는 쉽게 접근해 볼 수 있었다. "뭐야, 기타 코드에서 저음부만 한 줄 치면 되는건가?" G 하나 누르고 뚱~ 한 번 쳐보고 한 줄 내려서 C 하나 누르고 뚱~ 한번 튕겨보는 식으로 교회 구석에 앉아 중학생 친구들과 베이스를 가지고 놀았다. 내가 베이스 기타에 관심을 보이자 어느 날 저녁, 나이트 형님이 교회에 남는 베이스 기타를 한 대 주셨다. 노브도 하나 빠지고 여기저기 부딪혀서 깨지고 낡은 베이스 기타였는데 연습하기에는 문제가 없으니 이거 가져가서 연습해 보라는 거였다. 철야 예배에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케이스 없는 베이스 기타를 하나 얻어 눈을 맞으며 들고 왔다.   


  그사이 키가 조금 자랐다고는 해도 내 체구는 작은 편이었다. 베이스 기타의 기다란 넥을 잡고 연습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베이스 기타의 넥은 통기타와는 다르게 유난히 길고 두꺼웠다. 통기타를 치는 것보다 손가락에 더 많은 힘이 많이 들어갔고 움직임은 현저히 둔해졌다. 줄은 또 얼나마 굵은지 한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손가락으로 누르지 못 하니 두 세 손가락으로 동시에 눌러 힘을 꽉 쥐어 연습을 했다.  


  베이스는 너무 무거웠다. 바닥에 앉아 베이스를 연습하면 10분도 지나기 전에 오른쪽 허벅지가 눌리면서 다리가 저렸다. 잠깐 팽개쳐놓고 누워서 뒹굴뒹굴하다가 다시 베이스를 잡고 연습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베이스 기타의 이곳저곳을 눌러보며 소리를 들어봤다. 앰프 없이 기타줄만 튕겨봤기 때문에 오래된 기타줄에서는 뭉툭한 저음과 쇳소리가 함께 들렸다. 음의 위치를 외우고 박자에 맞춰 연주하는 게 단순히 재밌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열심히 음계의 위치를 외우고 튕기는 연습이 반복됐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한 두번 해보면서는 그 후로 교회를 옮겼을 때도, 어머니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도, 군대에서도, 대학을 가서도 꾸준히 베이스 기타를 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신학대학에 96학번으로 입학을 했지만 1, 2학년 시절은 증인들이라는 동아리에 거의 올인을 했다. 학과 수업은 소홀했다. 증인들은 학교 내 예배나 교회 수련회 사역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통기타를 치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베이스 기타가 더 자신 있는 악기가 되어 베이스로 지원을 했고 이후로는 거의 베이스 기타만 쳤다. 팀의 건반 두 명은 교회음악 전공자였지만 그 외의 모든 악기들은 비전공이었다. 일주일에 두 세번 합주 연습을 했고 이런 연습은 나에게 엄청난 흥미와 재미를 안겨주었다. 교회에서 하던 것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고 음악도 그럴듯했다. 나는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업 중간중간에는 동아리방으로 달려와 베이스를 치기도 하고 드럼을 치기도 하면서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압박 없이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증인들은 1학년 수습, 2학년 사역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3학년이 되면 동아리 OB가 되는 식으로 운영됐다. 2학년을 마치고 행정병으로 군대를 다녀와 3학년으로 복학해 학교를 다니면서 갑자기 베이스 기타를 칠 일이 사라졌다. 교회에서야 매주 치지만 2년간 일상처럼 연습하고 합주를 했는데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이 한 순간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 위 기수부터 증인들을 했던 사람들은 증인들을 마치고 나면 그 당시 교회 CCM 계의 태풍이었던 '컨티넨탈 싱어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컨티넨탈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컨티넨탈 싱어즈는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찬양팀인데 각 나라별로 선발하고 투어를 하면서 찬양사역을 하는 단체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CCM 음악의 선두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겨울 두 달만 짧게 투어를 하고 마치는 기수제 방식이었고 매년 오디션이 있었다. 이때는 내 악기가 없었기 때문에 뮬에서 듣도보도 못한 저가 베이스기타를 하나 중고로 구매하여 들러메고 컨티넨탈 사무실로 향했다. 작은 지하 사무실에는 오디션 보러 온 사람, 관계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벽에는 디사이플스 1집 포스터가 몇 장 붙어있었는데 공간의 분위기 자체가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껴서 나는 상당히 쫄아있었다. 준비된 오디션 곡을 두 곡 연주하고 짧은 면담을 진행한 후 서둘러 빠져나왔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오디션에 합격하여 베이스 기타로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합격했다고 해서 내 실력이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합격하고 한 번은 사전 연습을 하러 갔는데 그 기수의 다른 팀 지휘자를 맡으신 K목사님이 베이스 기타 연주 시범을 보여주었다. 나는 레슨 비디오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는 한 마디도 따라서 칠 수가 없었는데 취미와 프로페셔널의 간극이 얼마나 까마득한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즉석에서 나에게 여러 가지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가이드를 한다고 실력이 늘리는 없었다. 그때 K목사님은 나에게 이 얘기를 하셨다. "베이스 치는 사람이 몸이 왜 뻣뻣해"   


  혼자서 하는 연습은 가이드 없이는 한계가 명확하다. 가이드가 있다고 해도 독학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었고 넘치는 게 시간이었다. 언제나 놀기 바빴다. 통기타나 베이스 기타가 나에게 놀이였다. 가지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고 그게 어느정도 실력이 되어 여기저기서 사용할만큼이 된 것이 좋기는 했지만, 어느 이상으로는 절대 실력이 올라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적당히 하는 것이 수준 높은 실력 보장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가이드와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타를 가르칠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느 레벨 이상을 넘어가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것이었는데 나는 때를 다 놓치고나서야 알게되었다. 

4 Comments
별맛콜라 2022.08.17 00:25  
To be continue???
켄지 2022.08.20 23:13  
넵 계속 이어집니다 ㅋㅋ
yeasin 2022.08.23 00:36  
켄지선생님~ 다음 이야기 궁금합니다ㅎㅎ
정어리 2022.08.23 15:50  
재밌네요 ㅎㅎㅎ켄지님을 더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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