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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독학 정보

기타를 글로 배웠어요 3

켄지 0 1070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일을 하고 오셨다. 한국에 방문하실 때마다 선물을 사 오셨는데 신기한 모양의 작은 병에 담긴 이브 생로랑 향수 세트도 있었고 (분명 어머니 선물), 방바닥을 돌아다니는 비행기 장난감도 있었다. 물론 나는 코코아를 가장 좋아했다. 철로 된 갈색의 진한 코코아 통을 보면 나는 늘 먹어도 또 먹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카시오에서 나온 PT_30이라는 초미니 키보드였다. 길이 40cm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였는데 그 안에 스피커와 초미니 피아노 건반, 작은 LCD 화면과 알 수 없는 버튼들이 잔뜩 달린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그런 장비였다. 피아노처럼 되어있는 작은 건반이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장난감 같아 보였지만 기능이 굉장히 다양하여 장난감 이상의 만듦새를 가지고 있었다. 반주를 틀면 쿵짝쿵짝 드럼과 베이스 소리가 나왔고 왼쪽에 붙어있는 스피커 하단에는 코드를 누를 수 있도록 건반 모양의 같은 작은 버튼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누구도 이 녀석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하루는 누나와 함께 반주를 틀어놓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왼쪽 코드를 누르면 반주의 음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누르면서 도대체 이게 뭘까 생각했는데 그날은 C를 눌렀더니 되게 기분이 좋았고 F를 누르니 뭔가 도약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위에 샵이 있는 알파벳도 눌러보고 했는데 이상한 것 같아 리듬에 맞춰 C와 F를 왕복하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G를 눌렀더니 이게 뭔가 되게 그럴싸한거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으니 이 진행의 내막을 알 수는 없었다. 하단에는 sus4, maj7, min7 같은 정체 모를 버튼들도 있었는데 합쳐서 누르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다. 눌러보면 죄다 이상하게 들려서 과연 이 버튼들은 쓸모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했다. 이것들이 모두 코드(화음)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버튼이었다는 걸 기타 치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건 몰랐으므로 오직 C - F - G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로암'이 C - F - G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이럴 수가.    


  통기타를 치면서 코드는 뭔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배운적이 없으므로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었다.  실로암은 C가 나오면 늘 F가 다음에 나왔고 F 다음에는 다시 C로 갔다가 G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걸 반복하면 노래를 칠 수 있었다. 카시오 PT-30을 가지고 놀면서 C와 F는 네 칸 간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타는 모양이 입체적이라 간격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는데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네 칸이라고만 생각하고 코드 = 모양으로 외워서 쳤다. 음표도, 코드끼리 관계도 몰라서 그냥 그렇구나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A 코드와 D 코드, E 코드에서도 같은 맥락이라는 걸 전도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A 코드와 D 코드도 네 칸이라는 거잖아?!" 이제 세상이 네 칸 간격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칠 때도 코드끼리의 간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1도, 4도, 5도 이외의 다른 코드는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어디 구멍으로 잠시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노래를 하나하나 외웠는데 외웠다기 보다는 그냥 인식하는 것으로도 노래를 기억했다. 간격으로 맥락을 이해하니 외울 필요가 없었다.     


  내 옆에서 기타를 쳤던 두 살(위의) 형은 이제 외울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노래들까지도 모두 악보를 보고 쳤다. 몇 년간 교회에서 어린이 예배 피아노 반주를 했던 나의 아내도 당장 악보가 없어지자 매주 치던 노래를 칠 수 없었다는 증언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머리가 나쁜 것과는 관계가 없었다. 코드의 관계를 의식하고 의식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 시절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음악을 이해하는 뭔가 다른 것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커서까지도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식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줄 알았다. 두 살 형이 악보를 안 보면 기타를 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내 세계관에 의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게 자연스럽게 들려야 되는 것이고 음간의 간격도 몇 칸, 몇 칸인지 아는 게 당연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통기타를 가르치던 시절에는 노래를 들으면 코드를 따서 치고 싶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음간의 간격을 듣고 이해하는지 살펴보면 전혀 이해도 하지 못했고 스스로 간격대로 음을 따라 부르지도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레미를 악기 없이 스스로 머릿속으로, 혹은 입으로 불러서 쌓아 올리지 못했다. "아, 도레미도 모른다고?"할 수 있는데 분명 도레미는 모든 사람이 지식으로 안다. 하지만  '도'라는 음을 제시하고 자기가 스스로 레, 미, 파, 솔~ 입으로 간격을 맞춰 정확하게 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머릿속에 간격이 없다면 목소리로도 구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은 모르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음이 올라갈수록 정확한 장음계의 간격을 내지 못하고 음이 점점 떨어진다. 마지막에는 도레미파솔라시 '도'까지 음을 올려도 마지막 도의 실제 음은 '라'나 '시' 정도에 머무른다. 음이 떨어진거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맞죠?" 


  장음계의 간격이 머릿속에 정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음을 들어도 간격을 설정할 수가 없고 인지가 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기타를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다. 살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리코더를 불어본 이후로 단 한번도 음악적 활동을 해본 적 없는 성인이 너무 많았고 실물 드럼이나 키보드를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람들도 만났다.  


  매일 마룻바닥에 엎드려 이것저것 건반의 버튼을 눌러보면서 음계에 대한 이해도, 코드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던 것은 꽤나 운이 좋았던 어린시절을 살았던 게 아닐까. 음악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상대음감을 가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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